18세기 영국 미술2
18세기 영국 미술의 눈에 띄는 특징 중의 하나는 감각적 즐거움의 표현이다. 영국 경험론의 아버지라 불리는 프랜시스 베이컨은 <에세이>에서 이상적인 균형과 비례를 중시하는 고전 미술 전통을 비판하면서 "이런 인물은 화가 이외에 누구도 기쁘게 만들 수 없다."라고 했다. 그는 예술의 목적을 기쁨과 즐거움에 둔다. 미술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기에 가치가 있다. 과거의 미술이 이성이 도달한 이상적 형식이나 선과 덕을 작품을 통해 실현하는 데 목적을 두었다면 이 시기에는 감정에 직접적인 즐거움을 주는 데 목적을 둔다.
레이놀즈는 고전주의 틀 내에서 감각적 즐거움을 표현한다는 점에서 과도기 성격을 갖는다. 그는 인물이나 사물을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이상적인 포즈와 배경을 통해 고전주의 전통을 살리려 했다. 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즐거운 감정을 드러내려 시도했다.
<엘리자베스 부인과 자녀>를 통해 그의 의도를 쉽게 볼 수 있다. 인물들은 단순히 앉아 있거나 서 있지 않다. 엘리자베스 부인은 신화에 등장하는 여신처럼 이상화된 자태를 풍긴다. 아들도 먼 산을 바라보는 계산된 자세를 취하고 있다. 그가 그린 대부분의 초상화가 이처럼 전체적으로 웅장하며 우아한 분위기를 풍긴다. 남성은 언제나 고귀하고 용감하게, 여성은 우아하고 아름답게 그린다.
하지만 레이놀즈가 고전주의 형식만 답습한 것은 아니다. 이상적 자세와 구도가 주는 우아함을 전제로 하되, 시각적 즐거움을 가미했다. 그는 특히 어린이의 생생한 표정을 통해 감각적 즐거움을 표현하는 데 능숙했다.
이렇듯 18세기 영국 미술이 추구한 즐거움은 먼저 재미있는 상황 설정으로부터 온다. 게인즈버러의 <개싸움과 양치기 소년들>도 그러한 즐거움 중 하나다. 양을 지키는 개들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싸우는 장면인데, 한 목동이 놀라며 싸움을 뜯어말리려 한다. 이때 싸움을 말리지 말라며 다른 목동이 뛰어들면서 재미난 상황이 연출된다. 지극히 대조적인 두 소년의 표정과 동작이 웃음을 짓게 만든다.
레이놀즈의 <개를 안고 있는 보울 양>은 더욱 적극적인 표현을 보여준다. 조화로운 형식이 주는 감동이 아니라, 강아지에 대한 소녀의 애정을 생생하게 느끼게 해 준다. 두 팔로 강아지를 꼭 안고 있는 모습, 살짝 미소를 띤 입가,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정면을 응시하는 모습이 사랑스러움과 순진함을 생생하게 전달해서 그림을 보는 사람도 저절로 미소 짓게 한다.
빛을 이용한 시각적 즐거움도 한몫한다. 조지프 라이트는 인공조명을 통해 시각적 즐거움을 제공하는 것에 특별한 관심을 가졌다. <오줌주머니를 가지고 싸우는 소년들>에서는 두 아이가 오줌주머니를 차지하기 위해 싸운다. 옆구리에 끼고 있는 오줌주머니가 싸움의 원인인데, 영국에서도 우리처럼 오줌주머니에 바람을 넣어 공으로 사용했던 것 같다. 서로의 귀를 꼬집으며 빼앗기 위해 싸우는데, 손을 떼어 내려 하지만 쉽지 않은 표정이다. 굉장히 아픈 듯 얼굴이 시뻘겋게 변해서 찌푸리고 있는 소년의 표정이 재미있다.
이 작품은 장면이 주는 재미도 있지만 화가의 의도는 조명을 통한 명암 효과에 있었다. 인공조명을 이용하여 그동안의 회화가 주지 못했던 특별한 시각 경험을 제공한다. 우리는 위에서 아래로, 밖에서 안으로 향하는 자연의 빛에 익숙해 있다. 하지만 라이트는 아래에서 위로, 안에서 밖으로 향하는 인공조명이 얼마나 색다른 묘미를 줄 수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여기에 두 소년이 싸우는 동작을 통해 즐거움의 효과를 극대화했다.
당시 영국 화가들은 정신적으로 이상화된 작품이 즐거움을 제공할 수 없다고 여겼다. 쾌와 불쾌는 감각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아름다움도 감각을 통해 얻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전체적인 비례와 균형을 통해 절대적 미를 중시했던 합리론 미학과 구별된다. 구성미가 필요하기는 하지만 전체 구성의 이상화는 아니다. 사람의 외모나 동작처럼 개별적인 사물의 성질이 미적인 즐거움을 제공한다.
18세기 영국 미술의 풍경화
풍경화의 활성은 18세기 영국 미술의 가장 눈에 띄는 특징으로, 19세기 영국 풍경화의 황금기를 준비했다고 볼 수 있다. 풍경화의 발전은 미술 역사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먼저 인위적인 상황 설정이 주는 의미보다는 아름다움 자체에 주목했다는 점이다. 사회적으로 구성원에게 심어 주려는 어떤 목적보다 개인의 감상이 더 중요해진다. 다음으로 이성적 요소보다 감각적 요소가 중시된다는 점이다. 자연은 이성이 아닌 물질적 요소로 가득한 공간이다. 자연을 아름다움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것은 감각적 측면을 부각시켰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뜻에서 18세기에 시작해서 19세기에 만개하는 풍경화의 발전은 경험론의 확대와 긴밀히 연관된다.
게인즈버러는 18세기 영국 풍경화를 대표하는 화가다. 레이놀즈가 초상화에 집중했다면, 게인즈버러는 많은 시간을 야외에서 보내며 풍경화에 집중했다. 특히 한적한 시골 마을을 담은 <멀리 마을이 보이는 강 풍경>은 그의 특징을 잘 보여 준다. 이 그림은 자연 풍경을 꾸밈없이 있는 그대로 보여 준다. 이상적인 가공을 어디 한군데에서도 발견할 수 없다. 왼편의 나무는 이상화된 풍경에 흔히 등장하는 울창한 숲이 아닌, 앙상한 가지를 그대로 드러냈다. 중간에는 밑동이 부러져 쓰러진 나무가 있고,언덕을 따라서 속살을 드러낸 땅의 모습도 그대로다. 이때의 작품들은 풍경화와 관련하여 아름다움의 전형으로 여겨지던 전통적 기준에서 벗어나 있다. 대신 일상에서 볼 수 있는 실제의 자연 묘사, 자연이 중심이 되는 화면 배치 등을 담았다. 이는 미술에서 보편적, 획일적 기준을 인정하지 않고, 개인의 미적 판단과 취향을 중시하는 단계로 넘어가는 중임을 확인할 수 있다.
취미나 취향은 개인적 차원에서 나타나기에 아름다움의 기준을 상대화하는 역할을 한다. 이런 경향은 사회적 목적에 구속받지 않고 미술을 통해 개인이 가지고 있는 미적 감각을 발휘하는 장으로 전환된다.
18세기 영국은 산업 혁명을 매개로 하여 눈부신 과학 기술의 발달이 두드러진 사회 현상으로 나타나는 때였다. 일상적으로는 생활 개선에 기여하는 유용성 여부가 중요한 가치로 대두되었다. 미술에서도 과학을 통한 유용성 증진을 회화적으로 표현하려는 시도가 나타났다. 특히 라이트는 과학의 발전을 회화에 담으려 했고, 이를 통해 과학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확대하고자 했다. 실제로 라이트는 영국의 영향력 있는 과학자와 산업가 모임 구성원들과 지속적으로 교류했다. 유용성을 주는 과학에서 희망을 발견하고, 그림으로 구현했기에 '산업 혁명의 정신을 최초로 표현한 화가'라고 불리기도 한다.
<인광체를 관찰하는 연금술사>도 라이트의 생각을 반영한다. 전면에 실험 중인 연금술사가 있다. 유리로 만들어진 비커 안에서 인광체가 빛을 발하고 있다. 금을 만드는 현자의 돌을 찾던 과정에서 발광체인 인을 발견한 모양이다. 연금술사는 새로운 물질 앞에 경건하게 무릎을 꿇고 있다.
연금술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많은 새로운 물질이 발견되고 결과적으로 근대 화학의 발전에 큰 기여를 했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전까지는 연금술사들이 과학자 역할을 했던 셈이다. 라이트는 이 그림을 통해 과학에 대한 경이로움을 넘어서 거의 경배에 가까운 이미지를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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