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주의 미술
19세기 유럽은 낭만주의 미술의 전성기를 맞이한다. 신고전주의의 이성을 중심으로 한 사회적 도덕률에서 벗어나 생생한 삶과 직관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역사적 의미를 갖는 주제보다는 개인의 감정에 충실해진다. 예술가의 의지나 상상력 등 주관적, 표현적 요소를 중시한다. 또한 규칙화, 규격화된 선보다 강렬한 감정 표현에 적합한 색채에 주목한다.
신고전주의가 한창이던 프랑스에도 점점 낭만주의 물결이 퍼져 나갔다. 테오도르 제리코가 선구자라면 외젠 들라크루아는 전성기를 대표한다. 이들은 주로 공포와 고통의 감정을 형상화했다. 독일 낭만주의 화가들이 질병 등에 의한 개인적 죽음에 더 관심을 기울였다면, 제리코와 들라크루아는 비참하고 모순인 사회 현실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고통을 다뤘다.
제리코의 <메두사의 뗏목>은 프랑스 낭만주의 미술의 새로운 장을 연 작품이다. 1816년 메두사 호가 식민지로 향하던 중 좌초된 사건을 다뤘다. 전체 400여 명 중에 구명정에 탈 250명은 선장이 정하고, 나머지는 뗏목을 만들었다. 뗏목에 탄 사람들은 10여 일 동안 표류하다 구조되었는데 단 15명만 생존했다. 막대한 부를 안겨 주는 식민지 사업을 위해 왕실에 뇌물을 주고 사업권을 따낸 무자격 선장 때문에 일어난 사고다.
바다에는 허술한 뗏목을 날려버릴 듯 어마어마한 파도가 친다. 하늘에는 폭풍우를 쏟아낼 것 같은 먹구름이 밀려 오고 있다. 뗏목 가장자리에 시체들이 널브러져 있다. 오늘쪽 상단부에는 몇 사람이 옷을 흔들며 소리를 지른다. 수평선 멀리 파도 사이로 아주 작고 흐릿하게 배의 돛대가 보인다. 자신들을 구조해 줄 배를 발견한 것이다.
신고전주의 미술은 인간과 자연을 이상화하여 표현했다. 이를 위해 고상한 주제를 다루고, 단순하고 고정된 균형미를 추구했으며, 색채보다 형태를 더욱 중시했다. 제리코의 그림은 이러한 신고전주의의 정형성에 도전장을 내민다. 이상적, 교훈적 내용보다는 극한 고통을 그대로 보여 준다. 감정 표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에서 낭만주의의 문을 여는 작품으로 꼽힌다. 드디어 자기표현으로서의 미술이 등장한 것이다.
낭만주의 미술이 추구한 감정의 격동은 풍경화에서 역동적 움직임으로 이어진다. 자연의 꿈틀거림을 통해 새로운 시각적 체험을 제공한다. 버크의 '숭고로서의 아름다움'이 미친 영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놀라운 '숭고' 체험을 중요한 미적 체험으로 강조했다. 숭고 체험은 생존을 위협할 정도의 공포 속에서 탄생한다. 회화적 표현으로는 규모, 어둠, 거침, 단단함, 묵직함 등으로 나타났다. 공포가 숭고로서의 즐거움과 미적 체험을 제공할 수 있는 것은 감상자가 느끼는 공포와의 거리 때문이다. 고통이 직접 폭력에 이르지 않고 실제 위험과 관련이 없을 때 감상자는 놀라움과 함께 즐거움을 동반하는 미적 체험을 얻는다.
낭만주의 풍경화는 자연의 위력적인 모습을 통한 숭고 체험만이 아니라 적막감이 도는 자연 속에 인간을 배치함으로써 정신적 충만함을 표현하려는 경향도 나타난다. 프리드리히나 달에게 중요한 것은 사물의 정확한 형태나 동작이 아니었다. 상황과 색채가 인간과 어우러져서 풍기는 공간의 분위기야말로 정신을 드러내기에 적합하다고 여겼다. 자연이 단순한 대상이 아니라 인간의 정신 안에서 함께 공명하는 느낌을 살려 내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
낭만주의 화가들은 감정의 적극적 역할을 상상력과 신비적 상징의 영역으로까지 확장한다. 푸셀리는 합리적 사고를 넘어선 상상의 세계를 회화적으로 구현하는 데 선구적 역할을 한다. 푸셀리의 <악몽>에 등장하는 여인은 의식이 멈춘 곳에서 어떤 일이 생기는지를 보여 준다. 한 여인이 수렁처럼 깊은 잠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사이에 악령이 여인의 몸에 올라탄다. 커튼 뒤로 새로운 악령이 고개를 들이밀고 있어서 쉽게 끝날 악몽이 아님을 암시한다.
19세기 영국 낭만주의 미술은 독일과는 다른 표현 방식으로 나타났다. 프리드리히 같은 독일 낭만주의 풍경화에 영향을 받으면서도 존 컨스터블과 터너에 의해 독창적 성격이 강화된다. 이들은 영국의 특색 있는 낭만주의 풍경화를 대표하면서 동시에 둘 사이에도 다른 특징을 보인다. 컨스터블은 야외 사생을 통해 실제의 자연에서 빛의 변화와 함께 매 순간 다른 모습을 보여 주는 풍경을 담았다. 이성적으로 이상화된 자연이 아니라 감각을 통해 직접 마주하는 실제 자연을 표현했다. 이에 비해 터너는 주관적 성격이 크게 강화된 풍경화를 시도했다. 풍경의 외형적 사실에 얽매이지 않고 감성적 요소가 강한 빛과 색채를 화면에 도입하여 추상화 느낌의 풍경화를 창조했다.
영국과 독일의 낭만주의 미술
영국 낭만주의 미술에서는 헨리 푸셀리나 윌리엄 블레이크, 윌리엄 터너 등의 작품에서 격한 감정을 자주 만날 수 있다. 푸셀리의 <맥베스 부인>은 셰익스피어의 <맥베스>의 한 장면을 담았다. 비극의 시작은 자신과 남편의 출세를 위한 맥베스 부인의 욕망이다. <맥베스 부인>은 왕의 유령에 정신이 나간 맥베스 부인의 모습을 묘사했다. 눈은 동공이 열릴 정도로 공포가 가득하고 몸은 미친사람처럼 허우적거린다. 뒤로는 의사와 하녀의 놀란 모습이 보인다.
블레이크의 <비방>도 온몸으로 감정을 토해 낸다. 비방의 양상과 그로 인한 고통을 꿈틀거리는 인체를 통해 표현했다. 벌거벗은 사람을 둘러싸고 수많은 사람이 사정없이 돌을 던진다. 비방은 직접적, 육체적 폭력 이상으로 감당할 수 없는 고통 속에 몰아넣는다는 점을 시각적으로 보여 준다.
터너의 시도는 보다 파격적이다. 자신이 직접 겪은 공포의 감정을 보여준다. <바다 위의 폭풍>은 색채를 중심으로 순간적 인상을 담아낸 대표적인 작품이다. 제목을 보지 않으면 속도감이 느껴지는 추상화 같다. 거세게 휘몰아치는 혼돈의 세계로 끌어들일 듯한 흡입력이 느껴진다. 이 작품은 상상이 아니라 터너 자신의 경험의 산물이다.
독일 낭만주의의 절정을 보여 주는 화가로는 아르놀트 뵈클린을 꼽는다. 그는 그림에서 개별성, 상징성을 크게 강화한다. 풍경을 매개로 하더라도 개인의 마음속에 숨겨진 공포나 열정 등을 드러낸다. 또한 상상에 기초한 상징적 화면을 통해 인간의 고통을 직접 나타내기도 한다. 특히 죽음을 매개로 염세주의적 분위기를 표현하는 경향이 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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