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크 미술
16세기 후반부터 17세기 전반에 걸쳐 전개된 바로크 미술은 르네상스 전통의 매너리즘에 재반발하는 성격을 갖는다. 비례와 조화를 복구하고 현실성을 통해 생동감을 되살린다. 또한 원근법과 명암법으로 사실적 재현이 더 정교해진다. 하지만 르네상스 미술의 복제, 반복은 아니다. 감각적 역동성을 통해 격한 운동감과 극적 연출 효과를 추구한다. 또한 빛과 어둠의 극적 대비, 풍부한 질감 대비를 통해 현실성과 함께 선명한 집중점을 보여 준다. 이 과정에서 매너리즘 미술의 영향도 일부 반영된다. 매너리즘의 다양한 형태와 색채 실험 가운데 바로크 미술에 적용 가능한 것들을 취사선택하여 활용한다.
종교 개혁과 관련해서, 바로크 미술은 시대적으로 로마 가톨릭과 개신교의 종교 분리가 이미 현실화되고 자리 잡은 상태에서의 가톨릭 미술을 대표한다. 가톨릭 교회의 입장에서는 매너리즘 미술의 신비로운 분위기가 주는 매력은 인정하지만, 지나친 왜곡이 예수와 성모의 신성이나 메시지를 약화시키는 점에 대해서는 불만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현실적 역동성을 통해 신비로움을 표현하는 바로크 미술이 가톨릭 교회의 전적인 지원을 받았다. 바로크 미술은 현란한 기교를 통해 로마 가톨릭 교회의 실추된 자신감을 고취시키고, 또한 극적이면서도 교훈이 담긴 장면을 연출해 가톨릭 교리를 대중적으로 확대하려는 의지를 반영한다.
미켈란젤로와 티치아노는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화가이면서 바로크 미술에 적지 않은 영감을 제공했다. 특히 티치아노는 <이삭의 희생>처럼 과격할 정도의 격정적 화면 구성을 자극했다는 점에서 바로크의 선구자라 할 만하다. 라파엘로가 공간에 역동성을 부여하려고 노력했음에도 전반적으로 정적인 느낌을 벗어나지 못했다면, 티치아노는 그림 속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현장으로 우리를 직접 초대한다.
티치아노는 감상자의 시점을 아브라함의 발밑에 둔다. 코레조의 <성모 승천>과 같은 실험적 시도의 반영이다. 하지만 티치아노는 복잡한 요소를 제거하고, 명암 대비와 역동적 동작을 통해 현장성을 극대화한다. 우리의 시선은 아브라함의 발밑에서 죽음을 앞둔 이삭의 얼굴을 거쳐 한껏 휜 아브라함의 몸과 날카로운 칼, 이를 제지하는 천사와 그 너머로 펼쳐진 하늘로 향한다. 또한 감상자와 이삭의 얼굴을 마주하도록 하여 극적인 감정 공유를 실현한다. 아브라함의 젖혀진 몸과 펄럭이는 옷은 격렬한 에너지와 함께 긴박한 현장 분위기를 느끼게한다. 감각적 역동성이라 할 만하다.
미켈란젤로 다 카라바조는 인체의 사실적 재현과 함께 빛과 어둠의 대비 효과를 끝까지 밀어붙여 바로크 미술의 역동성을 실현했다. <베드로의 순교>는 베드로가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처형되는 장면을 그렸다. 화면 구성 자체가 역동적이다. 거꾸로 매달려 있는 정지된 화면이 아니라 십자가를 막 거꾸로 세우려는 순간이다. 한 명이 밑에서 등으로 십자가를 밀어 올리고, 두 명이 위에서 잡아 세운다. 몸이 기운 베드로가 고개와 몸을 틀어 감상자를 쳐다본다.
베드로의 얼굴과 몸, 다리를 보면 뼈와 근육, 피부를 가진 실제 인간을 재현하기 위해 쏟은 노력을 볼 수 있다. 무릎과 정강이의 뼈, 그 위에 근육과 피부가 요동치고 있는 느낌이 그대로 전달된다. 십자가를 세우는 일꾼들의 피부에서 땀이 배어나올 것 같다. 베드로의 얼굴도 섬세한 주름과 표정을 통해 각오와 두려움이 교차되는 감정선을 놓지지 않고 살렸다. 매너리즘 미술의 왜곡된 신체, 표정을 상실한 창백한 얼굴에서 벗어나 신체의 견고함을 복구했다. 하지만 르네상스 미술의 이상화된 조화와 고상함에 머물지 않고, 추하면 추한 대로 있는 사실 그대로를 드러내는 사실주의를 추구했다.
페테르 파울 루벤스는 바로크 초기 미술가들이 르네상스로부터 복구해내고 한발 더 진전시킨 빛과 어둠의 대비, 뒤틀린 신체의 역동성, 사실적 재현과 합리적 공간 구성 등의 요소를 종합적으로 소화하면서 바로크 미술의 꽃을 피운다. 루벤스의 <십자가에서 내려짐>과 피오렌티노의 <예수를 십자가에서 내림>을 비교하면 바로크와 매너리즘의 차이를 뚜렷하게 알 수 있다. 루벤스는 많은 사람을 한 화면에 구겨 넣으면서 발생하는 집중점 상실, 십자가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산만함을 빛과 어둠의 대비, 치밀한 구조를 통해 해결했다.
조각에도 바로크의 핵심 특징이 그대로 나타난다. 잔 로렌초 베르니니의 <테레사의 황홀경>은 바로크 조각을 상징하는 작품이다. 꿈속에 천사가 나타나 화살로 심장을 찌르는 순간 수녀 테레사가 고통과 함께 황홀감을 경험한 내용이다. 눈을 감은 채 입을 반쯤 벌리고 있는 그녀의 표정이 무아지경의 상태에서 환희에 가득 차 있음을 보여 준다. 뒤틀린 채 젖혀진 테레사의 몸이 조각에 힘을 불어넣는다. 연극의 한 장면처럼 연출된 동작이다. 물결치듯 흐르는 옷 주름은 바로크 조각의 화려함을 자랑한다. 특히 배경에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빛을 금빛 선으로 형상화하여 바로크 시대의 호화로운 건축을 장식하는 데 부족함이 없도록 했다.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한 16세기의 감각주의적인 바로크는 17세기 프랑스에서 고전적, 합리적 성격이 강화된 바로크로의 변화를 맞이한다. 이탈리아의 바로크는 가톨릭이 지향하는 종교적 메시지를 영웅적 포즈와 격렬하고 화려한 감각주의를 통해 실현했다. 17세기 프랑스 미술에서는 역동성을 유지하되 주제와 형식에서 이성적 요소를 강화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표현 방시기에서도 중요한 변화가 나타난다. 동작에는 감각적 요소가 여전하지만 몇 가지 점에서 감각적 대비에서 이성적 구성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 준다. 일단 선명한 색채 대비 등과 같은 감각적 표현을 상당히 절제했다. 인물의 입체성을 살리기 위한 명암 정도만 사용할 뿐 자극적인 대비 효과는 찾기 어렵다. 반면 좌우 대칭이라든가 사물의 형태 등 이지적 요소를 강화했다. 인물 묘사는 마치 그리스 조각의 정형화된 부동성을 보여 주는 듯해서 르네상스 고전주의에 가까운 느낌이다. 고전주의 예술의 명료성과 단순성 및 간결성을 통해 합리적 이성관을 매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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