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코코 미술
17세기 프랑스와 네덜란드 미술의 대표적인 흐름이었던 고전적, 합리적 바로크 경향은 17세기 후반을 넘어서면서 로코코 미술이라는 새로운 반발에 부딪힌다. 그렇다고 해서 17세기 미술이 이룩한 성취 모두를 부정한 것은 아니었다. 현세의 삶이라는 큰 방향, 과장된 동작에 대한 절제와 현실 가능한 화면 구성 등은 큰 틀에서 유지된다. 다만 프랑스 로코코 미술에서는 상층 시민 계급과 귀족 중심의 쾌락적, 관능적 분위기가 특징적으로 나타난다.
로코코는 바로크 시대의 호방한 취향을 이어받아 경박함 속에 표현되는 화려한 색채와 섬세한 장식, 건축의 유행을 말한다. 바로크 양식이 수정, 약화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로코코는 왕실 예술이 아니라 귀족과 부르주아의 예술이다. 다시 말하자면, 유희와 쾌락의 추구에 몰두해 있던 루이 14세 사후, 18세기 프랑스 사회의 귀족계급이 추구한, 사치스럽고 우아한 성격 및 유희적이고 변덕스러운 매력을, 그러나 동시에 부드럽고, 내면적인 성격을 가진 사교계 예술을 말하는 것이다. 귀족계급의 주거환경을 장식하기 위해 에로틱한 주제나 아늑함과 감미로움이 추구되었고 개인의 감성적 체험을 표출하는 소품 위주로 제작되었다. 또한 로코코에서는 신와저리가 많이 유행하였다.
프랑스 로코코 미술의 선구자로 불리는 장 앙투안 바토는 역사와 사회 발전에 대한 날카로운 인식을 바탕으로 로코코 양식에 있어서 '페트 갈랑트'를 그린 최초의 화가 가운데 한 사람이 되었다. 바토는 그늘진 공원과 환희에 찬 풍경을 배경으로 자그마한 인물을 자주 그렸는데, 그의 가볍게 반짝이는 붓질로 인해 인물들은 더욱 우아해 보였다. 이러한 바토의 <키테라 섬으로의 항해>도 귀족적인 삶을 예찬한다. 키테라는 그리스 반도 남쪽에 있는 작은 섬으로 고대에는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 숭배의 중심지였다. 키테라 섬은 사랑이 이루어지고, 연인을 구하는 사람들이 짝을 찾을 수 있는 곳이었다. 그림은 화사한 옷차림을 한 여러 쌍의 귀족 남녀가 사랑을 찾아 키테라 섬으로 향하는 장면을 표현했다.
아프로디테가 성애를 중심으로 한 사랑을 상징한다는 점에서 이 그림은 귀족 남성과 여성들이 쾌락에 대해 기대감을 잔뜩 품은 순간을 표현한다. 대부분의 남녀가 쌍을 이루고 있어서 곧이어 이어질 짜릿한 시간을 예감케 한다. 하늘의 천사들도 이들에게 쾌락의 섬으로 어서 오라며 안내한다.
17세기 프랑스가 절대 왕권의 시대였다면 후반기부터는 귀족과 시민 계급의 영향력이 강화되던 시기였다. 미술 양식도 이들의 취향과 필요를 반영하는 방향으로 변화한다. 권위적인 절대 왕정에서 벗어난 신흥 귀족이나 새롭게 부상하는 상층 시민 계급의 취향은 미술 양식에 있어서 한편으로는 향락적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섬세한 분위기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작용한다. 왕궁 같은 대규모 건축보다는 귀족과 시민 계급의 집 내부를 꾸밀 수 있는, 화려하면서도 아기자기한 작품을 선호하는 경향이 확대된다.
로코코 미술에서 빠질 수 없는 경향이 '페트 갈랑트', 즉 우아한 연회 그림이다. 귀족이나 상층 시민 계급 남녀가 야외에서 음악을 즐기거나 춤을 추가, 사랑을 나누는 모습을 밝은 색조에 실어 그리는 경향이다. 이 분야에서 가장 명성을 떨친 화가는 바토다. <공원의 연회>에서는 여러 무리의 귀족 가족이 공원의 숲속에서 여가를 즐기고 있다. 앞쪽에는 당시 유행하는 복장을 입은 남녀가 풀밭에서 대화를 나누며 한가한 시간을 보낸다. 배경을 이루는 나무나 주변 풍경이 상당히 사실에 근접해 있다. 루이 14세 사후에 왕권이 약화되면서, 귀족들이 엄격한 예절과 형식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연회를 즐기던 풍속을 그림에 실었다.
프랑수아 부셰는 로코코 양식으로 작업한 프랑스의 화가이자 소묘가, 판화가이다. 부셰는 고전적인 주제의 전원적이고 관능적인 그림과 장식적인 은유로 알려져 있다. 그는 18세기에 가장 유명하고 장식적인 예술가였다. 당시 신흥 시민 계급과 자유주의적인 귀족들이 가장 선호하던 장르가 여성 나체를 에로틱하게 표현하는 그림이었다.
이 분야에서 부셰는 <기대 누운 여인>에서 보이는 탁월한 표현 능력으로 환영을 받았다. 풍만한 육체를 드러낸 여인이 소파에 엎드려 있다. 허리에서 엉덩이를 거쳐 다리로 이어지는 여인의 곡선이 그대로 드러난다. 한쪽 다리를 소파 아래로 내려뜨려 살짝 벌린 포즈를 취하고 있는 것도 화가가 다분히 의도적으로 그림에 성적인 분위기를 불어넣으려는 장치인 듯하다.
소파 팔걸이에 팔을 기댄 포즈나 눈길로 봐서는 그 앞에 남성이 서 있으리라 예상되는 분위기다. 다른 여러 그림에서도 비슷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여성이 자주 등장하는데 아마 당시 구매자들이 가장 좋아했던 장면인 듯하다. 여성의 벗은 몸을 통해 에로틱한 분위기를 표현하는 그림이 얼마나 성행했는지, 이러한 종류의 그림에 대해 '젖가슴과 궁둥이의 그림'이라는 표현을 사용할 정도였다.
부셰의 <몸단장>은 에로틱한 분위기를 풍긴다. 하녀의 도움을 받으며 귀족 부인이 몸단장을 하는 중이다. 스타킹 끈을 매는 설정을 통해 하얀 허벅지를 슬쩍 드러냈다. 뒤편에는 당시 유행하던 동양식 병풍이 있다. 부인은 몸단장에 정신이 팔려 탁자 위나 바닥에 여러 물건으로 어지러워진 것에는 관심이 없는 듯하다. 부셰는 요염한 여인의 자태를 실어서 귀족이나 상층 시민 계급의 풍속을 표현하는 그림을 즐겨 그렸다. 워낙 감미롭고 화려한 그림에 능해서 라투르의 그림에 등장하는 퐁파두르 부인의 총애를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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