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전주의 미술
18세기 중반을 넘기면서 프랑스에서는 로코코 미술에 대한 반발로 신고전주의가 나타났다. 로코코 미술이 귀족과 상층 시민 계급의 호화스러운 일상을 담았다면, 신고전주의 미술은 교양 있는 중간층 시민 계급의 취향을 반영하면서 교훈적 메시지를 담았다. 프랑스 대혁명 이후 나폴레옹이 유럽에서 패권을 잡자, 신고전주의는 제정을 뒷받침하는 미술 양식이 된다.
표현 형식에 있어서는 광대한 자연보다 인체의 사실적 묘사와 무게감이 느껴지는 색채를 구사한다. 특히 18세기 중반 폼페이와 헤라클라네움, 파에스툼 등 고대 건축의 발굴과 그리스 문화의 재발견을 계기로 고대에 대한 동경이 커지면서 고전주의적 정확성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통일과 조화, 명확한 표현, 형식과 내용의 균형이 중시된다. 이를 위해 균형 잡힌 구도를 통한 공간 압축, 강직한 선을 통한 명확한 윤곽, 명암을 통한 입체성 등을 강조한다.
자크 루이 다비드는 프랑스는 물론 유럽 전체의 신고전주의를 개척한 선구자다. 프랑스 대혁명 이후에는 나폴레옹에게 중용되어 예술적, 정치적으로 미술계 최대 권력자로서 화단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는 한동안 로마에 머물면서 고대 조각을 연구하여 캔버스 안에 조각처럼 정확하고 입체적인 인물을 묘사하고자 했다.
다비드의 <레카미에 부인의 초상>도 그리스, 로마 미술의 조형미를 재해석한 작품이다. 그리스 미술은 엄격한 비례의 미, 즉 기하학적 조형성을 통한 안정된 구도를 중시한다. 남성의 몸은 정형화된 동작과 근육을 강조하고, 여성의 몸은 이상적인 비율과 우아한 동작을 강조하여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방식이다.
내용 면에서 신고전주의는 사회 구성원이 따라야 할 교훈을 이끌어 낸다. 그림 속의 레카미에 부인도 고결한 정신세계를 가진 여인의 이미지다. 그리스 여신처럼 우아하고 단아하다. 흰색 드레스로 온몸을 가려서 신체 중에 고작 팔과 손, 옷 밑으로 발만 약간 보일 뿐이다. 레카미에 부인을 통해 정숙한 여인의 표상을 보여주려는 의도가 보인다.
신고전주의 미술은 인체 형태만이 아니라 내용 면에서도 그리스, 로마를 담고자 했다. 처음에는 신화가 주요 소재였다. 멩스의 <파리스의 심판>도 그중의 하나다. 가장 아름다운 여인에게 주는 황금 사과를 놓고 아테나, 헤라, 아프로디테 세 여신이 경쟁한다. 제우스는 그 심판을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에게 맡긴다. 아테나는 지혜를, 헤라는 세계의 주권을, 아프로디테는 인간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를 각각 약속했다.
점차 신화를 넘어 그리스, 로마의 실제 이야기가 등장한다. 프랑스 화가 앙투안 장 그로의 <루카트의 사포>는 그리스 최초의 여성 시인 사포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사포는 호메로스와 견줄 만큼 명성이 높았는데, 다른 시인들이 거대한 스케일의 영웅 이야기를 선호했다면, 그녀는 개인의 내적 생활을 아름답게 읊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녀는 시의 여신이라는 이름을 얻은 후, 여성들을 모아서 소규모 학교를 개설하고 음악, 무용, 시를 가르치던 중 파온이라는 남자를 사랑하게 된다. 하지만 사랑하는 여인이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랑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그의 대답에 괴로워하다 바위산 절벽 위에서 바다로 몸을 던져 자살한다.
이후 신고전주의 미술은 신화를 넘어 그리스와 로마의 역사 속에서 극적, 교훈적 요소를 지닌 작품으로 확대된다. 미술을 통해 현실 사회에 교훈적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다. 장 바티스트 그뢰즈의 <키몬과 페로>는 로마 역사에서 전해 내려오는 극적인 장면을 담고 있다. 페로의 아버지 키몬이 죄를 지어 굶어 죽는 형벌을 선고받는다. 해산한 지 얼마 안 된 딸 페로는 감옥으로 면회를 가서 아사 직전에 있는 처참한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감시자 몰래 젖을 물린다. 이후 부모에 대한 극진한 효성심이 알려지면서 사면을 허락받게 된다. 신고전주의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라 할 수 있는 시민으로서의 덕목을 보여 준다.
다비드의 <소크라테스의 죽음>도 법의 권위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교훈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소크라테스가 사형을 선고 받고 감옥에서 독배를 마시기 직전의 상황이다. 소크라테스는 곧 이 세상을 떠날 사람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침착하고 열정적인 모습이다. 오히려 주위의 친구들과 제자들이 더 이상 그의 모습을 볼 수 없다는 듯이 괴로운 표정이다.
이 장면은 소크라테스와 관련하여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지만, 그중의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주제가 법에 대한 복종이다. 사형 집행이 있기 전에 그의 친구들이 감옥에 찾아와, 이미 손을 다 써놓았으니 탈출하여 이웃 도시 국가로 망명할 것을 권유했다. 정당하지 못한 법 때문에 억울하게 죽을 필요가 없다고 설득을 거듭했지만 소크라테스는 결국 죽음을 선택했다. 이 대화는 플라톤의 <크리톤>에 나와 있는데, 여기서 "악법도 법이다."라는 소크라테스의 유명한 말이 등장한다.
신고전주의 화가들은 그리스와 로마의 역사만이 아니라 현실의 정치적 상황을 주제로 설정하기도 했다. 특히 프랑스 대혁명을 전후하여 부상한 계몽사상, 신, 인간, 이성, 자연에 대한 구질서의 사고방식을 비판하고 현실 개혁을 이루고자 한 사상을 회화적으로 실현하는 데 많은 관심을 가졌다. 특히 봉건적 구체제의 비판과 새로운 사회의 열망이 현실에서 공화국에 대한 전망으로 나타났다.
신고전주의 화가들은 제정기에 나폴레옹의 업적을 기념하기 위한 대형 작품을 많이 제작했다. 다비드의 <나폴레옹 대관식>도 그중의 하나다. 혁명 이후 공화정에서 군주정으로의 전환을 상징하는 그림이다. 공화정을 추구했던 다비드는 감옥에서 나온 이후 나폴레옹의 열렬한 지지자가 된다. 프랑스 대혁명의 정신을 배반한 나폴레옹은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 오르고, 다비드는 대관식을 찬양하는 웅장한 그림을 그렸다. 나폴레옹이 황제의 관을 쓴 후에 황후가 되는 조세핀에게 관을 씌워 주는 장면이다.
특히 나폴레옹을 주제로 많은 작품을 남긴 화가는 그로다. 그로는 다비드의 수제자이자 신고전주의의 마지막 거장으로 불린다. <나폴레옹>은 전쟁터의 선두에 서서 전투를 진두지휘하고 있는 나폴레옹의 모습을 영웅적으로 그렸다. 한 손에는 국기를, 다른 한 손에는 칼을 움켜쥐고 병사들에게 전진하도록 독려하는 모습이다. 신고전주의 화가들을 비롯하여 당시 적지 않은 지식인들은 나폴레옹을 프랑스 대혁명과 공화주의의 상징으로 이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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