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시 미술
우리는 언어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미술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 만약 우리가 미술이라는 말이 사원이나 집을 짓고, 그림을 그리고 조각을 만들거나 문양을 짜는 것과 같은 행위들을 의미하는 것으로 본다면 이 세상에 미술과 관계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반면에 미술이라는 단어를 어떤 종류의 아름다운 사치품, 박물관이나 전시회에 진열된 어떤 것, 또는 값비싼 장식품 같은 특별한 물건들을 의미하는 것으로 본다면 미술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로 볼 수 있다. 이런 차이점을 건축과 관련해서 생각해보면 가장 잘 알 수 있다. 우리는 아름다운 건물들이 많이 있고 그중에는 진정한 예술 작품들도 있다는 것을 안다.
이처럼 우리가 원시 미술이 만들어진 목적을 모른다면 그것에 대해 제대로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갈수록 미술 작품의 제작 목적들은 더 명확해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더욱 낯설어진다. 우리가 이 시대의 사람을 '원시인'이라고 부르는데 그 까닭은 그들이 우리보다 더 단순해서가 아니라 모든 인류가 거쳐온 문명 이전 상태에 보다 가깝기 때문이다. 그들의 오두막 집은 비바람과 햇볕으로부터, 그리고 그런 것들을 만들어낸 정령들로부터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만든 것이다. 그리고 모형도 그들이 자연의 힘처럼 현실적으로 여기는 다른 힘으로부터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다시 설명해서 그림과 조각은 주술적으로 사용된 것이다.
이처럼 미술의 신비한 기원을 이해하려면 원시인들이 그림을 감상하기 위한 목적보다는 '실용적' 효과가 있는 어떤 것으로 생각하게끔 만든 체험의 정체가 무엇인지 그들 생각 속으로 들어가 보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이런 생각들은 매우 중요한데 그것은 우리에게 현재까지 남아 내려오는 가장 오래된 그림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19세기에 스페인의 한 동굴 벽에서, 그리고 프랑스 남부의 동굴에서 벽화가 발견되었을 때 고고학자들은 빙하 시대에 이처럼 생동감 있고 살아 있는 듯한 동물 그림을 인간이 그렸다는 사실을 처음에는 믿으려 하지 않았다. 점차 이 지역에서 돌과 뼈로 만든 도구들이 발견되면서 매머드와 순록, 들소 같은 짐승들을 사냥하여 그 짐승들은 아주 잘 알고 있던 사람들이 그 벽화들을 정말로 그렸거나 채색했다는 사실을 점차 확인하게 되었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사람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곳을 단지 장식하기 위해 땅속의 무시무시한 어둠으로 들어가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점이다. 더구나 라스코 동굴에 그려진 몇몇 그림들을 제외하면 이런 그림들은 천장이나 벽에 분명하게 배열되어 있지도 않고 어떤 질서나 구성없이 뒤죽박죽으로 그리거나 이미 있던 그림 위에 덧그린 경우가 많다. 이러한 그림들을 볼 때 원시 사냥꾼들은 그들의 먹이를 그림으로 그리기만 하면 실제로 동물들을 잡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
물론 이것은 추측이지만 이런 추측은 고대의 관습을 아직도 잘 보존하며 현 시대에 살고 있는 원시인들이 미술을 이용하는 것을 보아도 잘 뒷받침된다. 아직도 돌로 만든 도구들만을 사용하며 주술적인 목적을 위해서 바위에 동물들의 그림을 그리는 부족들이 있다.
원시 미술은 이처럼 미리 정해진 방식으로 만들어지지만 그래도 미술가의 기질을 알아볼 수 있는 요소는 있다. 어떤 부족의 장인들의 높은 수준으로 숙련된 솜씨는 참으로 놀랄만한다. 우리가 원시 미술을 이야기할 때 잊어서는 안 될 것은 '원시'라는 단어가 이들 미술가들의 재능이 미개하다는 뜻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러한 작품들이 얼마나 간단한 도구로 만들어졌는가를 알게 되면 이들 장인들의 인내력과 대단한 솜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세계의 어떤 지역에서는 원시 미술가들이 이러한 장식적인 방법으로 그들의 신화에 나오는 여러 가지 인물 조각상과 토템을 표현하는 정교한 체계를 발전시켜왔다. 예를 들어 북미의 인디언 중에서는 우리들이 사물의 실제 모습이라고 부르는 것을 무시함으로써 자연적인 형태에 대한 그들의 대단히 예리한 관찰력을 표현하기도 한다. 그들은 사냥꾼임으로 독수리의 부리나 비버의 귀 생김새를 우리들보다 훨씬 더 자세히 알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의 한 가지 특징만 그려도 대단히 만족스럽다고 생각한다. 즉, 독수리의 부리를 가진 가면은 그것이 바로 독수리인 것이다.
원시 미술은 이러한 설명이 없이는 이들의 많은 애정과 노력이 깃든 의미를 전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조각들의 정확한 의미는 조금밖에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러한 작품들을 발견해서 그 비밀을 알아 내려는 학자들의 노력 덕분에 그것들을 다른 원시 문화의 작품들과 비교해 볼 수 있게 되었다. 16세기에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정복자들이 도착했을 때, 멕시코의 아즈텍족과 페루의 잉카족은 강력한 제국을 통치하고 있었다. 이보다 앞서 중앙아메리카의 마야 제국은 결코 원시적이라고는 할 수 없는 거대한 도시를 건설하고, 문자 체계와 빈틈없는 달력을 개발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콜럼버스 이전의 아메리카 인들은 사실 묘사와 같은 방법으로 인간의 얼굴을 완전하게 표현할 수 있었다. 고대 페루인들은 어떤 그릇들을 사람의 머리 형상으로 만들기를 좋아했는데 그것은 실물과 꼭 닮았다. 이러한 문명이 만들어낸 대부분의 작품이 우리에게 낯설고 부자연스럽게 보인다면 그 이유는 그들이 전달하고자 하는 관념 때문일 것이다.
아즈텍의 <비의 신 틀라록>에서 학자들은 이것이 틀라록이라는 이름을 가진 비의 신을 표현한 것이라고 믿고 있다. 이러한 열대 지방에서 비는 사람들에게 삶과 죽음의 문제일 때가 많다. 비와 뇌우의 신이 그들의 마음속에 무섭고도 강력한 수호신의 형상을 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하늘에서 치는 번개가 그들의 상상으로는 커다란 뱀처럼 보였기 때문에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방울뱀을 신성하고 막강한 존재로 여겼다. 번개의 힘을 상징하는 신성한 뱀의 몸을 가지고 비의 신의 형상을 만들어내는 것은 확실히 타당한 일이다. 고대 멕시코 미술에서 이 신성한 뱀은 방울뱀의 그림일 뿐만 아니라 번개를 나타내는 기호로, 뇌우를 기념하거나 불러오는 기호로 발전할 수도 있다. 우리가 미술의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림과 문자는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 두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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