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미술
7세기와 8세기에 그 이전 시대의 모든 것을 휩쓸어버리고 페르시아,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북아프리카와 스페인을 정복한 중동의 종교인 이슬람교는 형상의 문제에 있어서 기독교보다 훨씬 더 엄격했다. 이슬람교에서 우상을 만드는 것은 금기였다. 그러나 금기라고 해서 예술을 쉽게 억압할 수는 없었다. 인간의 형상을 그리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던 동양의 예술가들은 그 대신 문양이나 형태 자체의 아름다움에 그들의 상상력을 표현했다. '아라베스크'라고 알려진 매우 정교한 레이스 같은 문양은 이슬람 미술의 대표적인 문양이다. 식물이나 기하학적 무늬를 모티프로 하는 아라베스크 무늬는 건물을 비롯해 공예품, 양탄자 등을 장식한다. 식물 문양의 모티프는 비잔틴과 지중해로부터 온 것이며, 중세부터 추상적이고 독창적인 이슬람 양식이 만들어지며 여러 분야에 사용되었다. 16세기부터 17세기 현재의 터키, 이란, 인도 지역에서는 더 복잡하면서도 자연주의적인 꽃과 풀의 형상을 담은 패턴이 유행하기도 하였다.
이슬람 미술의 기하학적 무늬는 그리스, 로마, 사산왕조페르시아의 영향을 받았는데, 이슬람교의 우상숭배 금기 원칙의 영향으로 이슬람권에서 더욱 발전하였다. 이슬람권의 기하학적 무늬에서는 좌우대칭과 규칙의 반복이 특히 중시되며, 수학, 천문학, 과학적인 성격을 지녔다고 볼 수 있다. 이슬람권 밖에서도 세계의 여러 나라는 중동의 양탄자를 통해서 이 신비한 문양들을 접하게 되었다. 이렇게 정교한 디자인과 풍부한 색채의 배합 설계를 우리가 감상할 수 있는 것은 마호메트의 덕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미술가들의 마음을 현실 세계의 사물로부터 선과 색채라는 환상의 세계로 돌리게 했다. 14세기 이후의 페르시아와 그 뒤에 무굴 왕조 때의 인도에서 제작된 연애나 역사, 우화 등을 묘사한 삽화들은 당시의 화가들이 문양의 디자인에만 국한되었던 훈련에서 배운 바가 얼마나 많았는지 보여준다. 15세기 페르시아의 연애 이야기에서 따온 <달빛 아래 정원의 정경>은 이 놀라운 솜씨의 완벽한 예를 보여준다. 인물과 나무와 풀들은 마치 색종이에서 오려내 완전한 문양을 만들기 위해서 화면 전체에 골고루 붙여놓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바로 이런 이유로 실감 나는 그림보다 마치 본문을 읽듯이 그림을 읽을 수 있다.
중국 미술
중국에서는 종교가 미술에 끼친 영향이 이슬람의 경우보다 훨씬 더 강하게 나타났다. 1세기를 전후해서 중국에서는 이집트인들을 연상시키는 매장 풍습이 생겨났는데 그 묘실에는 이집트에서와 마찬가지로 당시의 생활과 풍습을 반영하는 생생한 장면이 그려져 있다. 이미 그 당시에 우리가 전형적인 중국 미술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들이 발전되어 있었다. 중국 미술가들은 딱딱하고 각진 이집트식 표현보다는 부드러운 곡선을 사용했다. 중국 조각에서도 이와 같은 점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은 뒤틀리고 구부러진 것같이 보이지만 결코 견고함을 잃지 않았다.
중국의 위대한 사상가들은 미술을 과거의 황금 시대에 있었던 도덕의 위대한 모범을 사람들에게 상기시켜 주는 수단으로 생각했다. 현재까지 보존되어 온 옛날 두루마리 그림책 중에는 유교 정신에 따라 씌인 덕망 있는 여인들의 훌륭한 모범을 모아놓은 것이 있다. 4세기에 화가 고개지가 그렸다고 전해지는 <여사잠도>를 보면 우리가 중국 미술을 볼 때마다 느끼는 위엄과 우아함이 아주 잘 드러나 있다. 더욱이 이 작품은 이 화가가 운동감을 표현하는 기술을 터득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 초기의 중국 그림에는 딱딱한 부분은 하나도 없는데 그것은 마치 물결치는 듯한 선이 화면 전체에 운동감을 불어 넣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미술에 가장 강력하게 활력을 불어넣어 준 것은 불교이다. 불교의 승려나 고행자들은 가끔 놀랄 만큼 사실적인 조상으로 표현되었다. 여기에서도 귀와 입술, 볼의 윤곽을 이루는 곡선들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곡선들이 실제 형태를 왜곡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로 융합시키고 있다. 이런 작품의 우연의 효과는 아무렇게나 만들어진것 같은 느낌은 주지 않으며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서 전체 효과를 내는 데 함께 기여하고 있다.
불교가 중국 미술에 끼친 영향은 단지 미술가들에게 새로운 과제를 제공해준 것에서 그치지 않았고, 그림에 대해서 완전히 새로운 접근 방식을 도입시켜 미술가의 업적을 매우 존중하게 했다. 중국 사람들은 그림 그리는 일을 하는 화가를 시인과 동등한 위치로 보았다.
이러한 점에서 중국의 종교 미술은 중세의 기독교 미술이 그랬던 것처럼 부처의 전설이나 중국 사상가들의 특정한 교리를 가르치기 위해 사용되었다기보다는 오히려 명상의 실천을 위한 도구로 사용되었다고 볼 수 있다. 신앙심이 깊은 미술가들은 어떤 특수한 교리를 가르치거나 단순한 자의식으로서가 아니라 깊은 명상의 자료를 제공해주기 위해서 존경의 마음으로 산과 물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러한 경향은 12세기와 13세기의 중국 산수화의 위대한 걸작들이 의도했던 것이다. 중국의 미술가들은 소재를 직접 대하고 그리기 위해 밖으로 나가 그리지 않았다. 그들은 그들 나름의 명상과 정신 집중이라는 색다른 방법을 통해서 그들의 예술을 익히고 발전시켰다. 그 과정에서 먼저 그들은 직접 자연을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유명한 대가의 작품을 보고 연구함으로써 자연을 그리는 법을 배웠다. 그들은 이런 기법을 완전히 습득한 다음에야 여행길에 올라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해 사색하고 그것을 깊이 마음에 새겨 집으로 돌온 뒤, 마치 시인이 산책 하다가 머리에 떠오른 여러 가지 이미지를 짜 맞추어 시를 짓듯이, 소나무와 바위와 구름에 대한 그들의 이미지들을 한 데 결합하여 그 분위기를 다시 화면에 표현하려고 했다. 자연에서 몇 개의 단순한 주제를 선정해서 그것을 절제하며 전개하는 중국 미술의 기법은 참으로 감탄할만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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