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현실주의 미술
근대 정신을 상징하는 이성에 대한 비판을 넘어 아예 그 기반인 의식이나 자유 의지 자체에 회의적 시선을 보내는 방향으로 현대 미술의 몇몇 경향이 생겨난다. 무의식 세계를 파고드는 초현실주의 미술도 그중 하나다. 과거의 미술이 의식 작용을 바탕으로 이루어졌다면, 초현실주의는 창작 행위에서 무의식의 역할을 중요시한다.
초현실주의 미술은 정신 분석 이론의 문제의식을 회화적으로 표현한 대표적인 흐름이다. 초현실주의는 20세기 초반 프랑스에서 시작되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전위적 미술 운동이다. 의식 중심의 예술을 정면으로 거부하고 무의식 세계를 미술의 중요한 묘사 대상으로 삼는다. 꿈과 무의식 세계에 대한 상상력을 기반으로 필연보다는 우연을, 정상적 상태보다는 광적인 증상을 표현한다. 이를 위해 서양 회화를 지배하던 원근법과 투시법 등 사실적, 입체적 표현 방식을 완전히 부정한다.
초현실주의는 내면에 억압된 욕망과 꿈, 잠재의식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작업을 주요 방향으로 삼는다. 이성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나고 심미적이거나 도덕적 영향도 철저히 배제한다. 실제의 회화적 표현에서는 꿈이나 작가 자신이 겪는 정신적 갈등을 통해 직접적으로 무의식 세계를 드러낸다. 혹은 일상에서 접할 수 없는 환상적 시간과 공간을 통해 무의식 세계를 느끼는 경험을 제공한다. 나아가 무의식 요소를 상징과 기호를 통해 묘사하기도 한다.
프랑스 시안 앙드레 브르통은 초현실주의 예술을 본격적으로 제안한 인물이다. 프로이트를 만나고 정신 분석 이론에 동의한 브르통은 1924년 '초현실주의 선언문'을 발표하고, 이를 기점으로 초현실주의 미술이 본격화된다. "초현실주의는 이성과 감성의 대화, 현실과 꿈의 교감, 철학과 예술의 교감, 통일과 자유의 교감, 순수한 직관과 과학적 기하학의 교감, 대지와 우주의 교감이다."를 실현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통로가 바로 프로이트의 정신 분석 이론이었다.
브르통은 "한 마리의 말이 토마토 위를 달리는 모습을 생생하게 떠올릴 수 없는 사람은 백치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그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소재를 뒤섞어 놓으라고 말한다. 초현실주의의 주요 표현 방법인 데페이즈망의 강조다. 전치, 전위법 등으로 번역되는데, 사물을 본래의 용도, 기능, 의도에서 떼어 내어 엉뚱한 장소에 나열함으로써 초현실적 환상을 창조하는 방법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상식과 합리성에서 벗어나 무질서와 우연으로 나아가 새로운 의미를 획득한다.
살바도르 달리의 <기억의 고집>은 낯선 공간에 배치된 사물을 매개로 시간의 논리성이 사라진 무의식 세계의 단면을 묘사했다. 보통 시간은 정확성을 상징한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시간은 정확성의 고정관념을 벗어던진다. 시계가 녹아내린다. 자연의 나무 위든, 인공물 위든, 흘러내리는 시계 속에서 시간은 본래의 규격화된 틀을 유지하지 못한다. 시간과 공간에 기초한 현실성이나 일관된 논리성을 찾아볼 수 없다. 인류가 생긴 이래 현재에 이르기까지 무의식의 세계 안에 시간의 자리가 없었음을 보여 주려는 의도인 듯하다. 정신 분석학에 의하면 무의식에는 시간적 질서가 없다. 무의식을 형성하는 억압된 욕구는 시간의 순서에 따라 나열되지 않는다. 시간이 흘러 나이가 든다고 해서 무의식의 힘이 옅어지거나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만큼 무의식에 논리적 시간과 공간 개념이 들어설 자리는 없다.
사물을 원래 모습에서 벗어나 전혀 다르게 묘사하는 것도 초현실주의 미술이 즐겨 다루는 방법이다. 특히 화가 자신의 무의식 세계를 표현할 때 의도적 변형이 자주 나타난다. 아름다움의 의미를 사실적 표현에서 벗어나기 위한 출구를 도발적 변형에서 찾는다.
프리다 칼로의 <부상당한 사슴>은 파격적 변형이 무의식 표현에서 얼마나 효과를 극대화 시킬 수 있는지를 잘 보여 준다. 칼로의 얼굴을 한 사슴이 화살에 맞아 피를 흘린다. 목에서 엉덩이에 이르기까지 여러 대의 화살을 맞아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다. 바닥에 널브러진 나뭇가지는 다가올 운명을 암시한다. 내면의 표현이 외부 세계를 압도한다. 자신의 몸에 화살을 꽂아 두고 응시하는 화가의 얼굴을 떠올리게 한다.
초현실주의 미술은 현실과 비현실을 그림 안에 뒤섞음으로써 의식의 허구성을 드러내고 무의식의 입구로 안내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우리는 시각을 통해 사물을 인식하고 여기에 확실성을 부여하곤 한다. 하지만 실제의 인간은 카메라와 같은 기계적 작용이 아니라 주관적으로 형성된 어떤 마음 상태를 반영하여 사물을 본다. 그 마음에 의식과 무의식이 공존한다면 현실은 이미 비현실과 뒤섞여 있을 수밖에 없다.
르네 마그리트는 이율배반적 이미지를 통해 현실과 의식의 허구성을 드러냈다. 대표작인 <빛의 제국>은 그의 의도를 잘 보여 준다. 언뜻 보면 흔히 볼 수 있는 밤 풍경이다. 짙은 밤인 듯 집과 주변의 나무는 형태를 식별할 수 없을 정도로 온통 까맣다. 다만 희미한 불빛이 새어 나오는 창과 가로등 빛에 비친 벽이 어렴풋이 보일 뿐이다. 하지만 하늘은 화창한 한낮의 풍경이다. 태양이 작렬하는 낮 시간의 밤의 경치인 셈이다. 시간이 그림 안에서 뒤죽박죽 섞여 있다.
작품은 이미지와 시각의 배반을 통해 인식과 실재 사이의 틈을 드러낸다. 마그리트는 "우리는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세상이 단지 정신적 표현으로서 우리 내부에서 경험되는 것일지라도 우리는 세상을 외부의 것으로 여긴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현재 발생하는 일을 과거에 놓는다. 그리하여 시간과 공간은 일상의 경험이고 고려하는 단 하나의 정제되지 않은 의미를 상실한다."고 설명한다. 마그리트는 확실한 대상과 확실한 주체라는, 서구의 근대적 인식 틀 자체에 근본적인 의문을 던진다.
상징은 정신 분석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초현실주의 미술에도 다양한 방식의 상징이 등장한다. 초현실주의 미술 작품은 수수께끼와 같은 상징을 분석해야만 하는 경우가 많다. 상징 가운데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장치가 도형을 비롯한 추상화된 기호다.
호안 미로의 <어릿광대의 사육제>는 기호가 만들어내는 축제 같다. 수많은 종류의 도형과 직선, 곡선이 어지럽게 뒤섞여 있다. 자세하게 살펴보면 몇몇 군데에서 새와 물고기, 곤충, 기괴한 모습의 어릿광대 등을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외에는 알 수 없는 도형과 선이 어지럽게 놓여 있다. 놀이하듯 자유롭게 미끄러지는 검은 선과 강렬한 원색의 추상적 기호가 이상적이다. 이 그림은 미로가 경제적으로 너무 어려워 제대로 먹지도 못하던 시절, 굶주림에 혼미한 상태에서 천장 위에 떠다니는 초현실적 환상을 그림으로 완성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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