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주의 미술
인상주의 미술은 근대와 현대의 경계선에서 나타난 경향이다. 근대적 사고방식과 미의식을 규정짓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합리적 이성이었다. 인간의 사고와 행위가 도달해야 할 목표는 결국 이성의 절대화와 합리성에 기초한 계몽주의였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신고전주의나 낭만주의 미술도 큰 틀에서는 이러한 신념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19세기 후반에 접어들면서 인간의 삶이 합리적, 과학적 사고방식으로는 접근하기 어렵고 오히려 은폐된다는 문제의식이 나타난다. 삶이란 항상 역동적으로 변하기 때문에, 고정된 사물이나 현상을 대상으로 하는 이성적 사고로는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따라서 삶의 의의, 본, 가치는 체험이나 직관에 연관된 의지에 기초할 때 파악이 가능하며, 이를 통해 규명된 충실한 삶 속에서 인간의 궁극적인 가치를 실현할 수 있다고 보았다.
감각이나 의식이 현실에 대해 단순화된 인상만을 인지할 뿐이라는 생각이 인상주의 미술의 기반이 된다. 인상주의 미술은 개별 사물의 부분적, 표면적 인상만을 받아들인다. 그러므로 화가에게 창작은 자신이 획득한 순간적, 일회적 인상을 캔버스에 실현하는 과정이다. 그 인상이 주관적 표상과 분리될 수 없는 이상 화가는 특정한 순간에 갖는 감정과 직관을 작품이 표현한다.
클로드 모네의 <인상, 해돋이>는 인상주의라는 표현을 만들어 내는 계기가 된 작품인 만큼 그 특징을 가장 잘 보여 준다. 작은 배가 실루엣을 통해서나마 최소한의 형태를 알아볼 수 있을 정도다. 나머지는 어느 것 하나도 명확하게 자기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사물과 사물 사이의 경계도 거의 무너진 상태다. 멀리 붉은 해가 떠오르고 물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하늘에도 온통 붉은빛이 퍼진다. 하지만 그 어떤 그림보다도 안개가 짙게 낀 강가를 배경으로 해가 떠오르는 인상을 실감나게 표현했다. 매일 뜨는 해지만 날씨와 대기의 상태, 나아가서는 화가 개인의 감정 등이 결합되면서 일회적 인상을 부여한다.
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서는 보다 적극적으로 화가의 주관적 인상을 통해 대상이 변형된다. 밤하늘의 별과 달이 소용돌이치는 급류처럼 서로 얽히고설키면서 흐른다. 나무와 산 아래 집들은 수직으로 별의 흐름과 만난다. 반 고흐는 짧게 끊어진 수많은 선을 촘촘하게 배열하는 방식의 붓 터치를 통해 역동적으로 출렁이는 하늘과 대지를 묘사했다. 실제의 자연이 어떻게 생겼는가는 중요하지 않고, 특정한 시간과 공간에서 화가가 빛의 흐름을 어떻게 느꼈는지가 더 중요하다.
인상주의 화가들이 자연의 빛을 사랑한 것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사실이다. 같은 풍경도 햇빛과 각도에 따라 각양각색의 느낌을 준다. 색 변화만이 아니라 형태조차도 다르게 표현한다. 자연의 빛에 대한 관심은 폴 세잔, 에두아르 마네, 모네, 에드가 드가, 반 고흐, 르누아르 등 인상파 미술을 대표하는 화가들의 가장 큰 공통점이다. 그들은 캔버스를 들고 화실 밖 자연으로 나갔다. 대지 위에 작렬하는 빛의 흐름, 인간의 신체를 간질이는 듯한 빛의 향연에 매료됐다.
인상주의 미술의 선구자 역할을 한 장 바티스트 카미유 코로와 장 프랑수아 밀레 등은 파리 교외의 바르비종을 비롯해 여러 곳을 찾아다니면서 많은 풍경화를 남겼다. 바르비종파로 불리는 이들은 자연의 착실한 관찰자로서 자연을 감싸는 대기와 빛의 효과에 주목하여 빛의 처리를 민감하게 생각했다.
흔히 빛의 영역은 해가 떠 있는 아침부터 저녁까지라고 생각한다. 형태와 질감의 재현을 목적으로 삼았던 전통적인 화가들에게 사물의 경계가 극단적으로 무너지는 밤 풍경은 기피 대상이었다. 어둠을 이용하더라도 불빛에 드러난 사물을 극적으로 강조하기 위한 장치였을 뿐 밤 자체를 탐구 대상으로 삼은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하지만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빛의 마술은 밤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특히 밤은 자연의 달빛과 함께 인공의 빛을 선사한다. 가로등이나 전등은 밤의 세계를 화려하게 해준다. 그래서 인상파 화가들은 별빛, 달빛과 함께 전등 불빛이 만들어 내는 화려함을 캔버스 속에 표현하려 노력했다.
인상주의 화가들은 역사적인 교훈이나 도덕적인 훈계에 대해서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중세나 르네상스, 그리고 근대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서양 미술은 종교적, 역사적인 맥락을 중시했다. 지배 계급의 이해나 취향을 반영하는 내용이 중심이었다. 인간을 다루더라도 개인보다는 정신을 매개로 보편적 존재로서의 인간에 접근했다.
하지만 보편적 특징을 중심으로 인간을 규정하는 시도는 허구적이다. 현실 인간은 보편적인 형태가 아니라 구체적인 시간과 공간 안에 개체로서 존재하기 때문이다. 삶을 영위하는 인간은 개별 존재일 수밖에 없다. 또한 인간의 모든 기능과 특성은 신체의 움직이나 활동과 분리될 수 없다. 인상주의 화가들은 현실 인간의 삶, 특히 일상의 한순간을 캔버스에 담았다.
인상주의 화가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형태와 빛을 분해했다. 즉흥적이고 원칙이 없는 주관적 변형이 아닌 나름의 논리와 체계를 제시했다. 그들은 내적 본질로 들어가면 모든 사물에는 기본 구조가 있어서 일관된 묘사가 가능하다고 보았다. 그래서 세잔은 "사물의 본질적 구조를 드러냄으로써 인상주의 미술을 박물관의 미술품처럼 견고하고 지속적인 것으로 만들고 싶다."고 했다. <생 빅투아르 산>은 세잔이 드러내고자 하는 사물의 본질적 구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 단서를 제공하는 작품이다. 그는 빛의 효과를 넘어 면과 색에 대한 분석적 이해에 도달한다. 다른 사물을 관통하는 단순한 구조, 즉 원통, 원뿔, 사면체 등 기하학적 요소를 시각화했다.
세잔은 평면 캔버스에 3차원 공간을 구현하는 입체감과 사물 사이의 전통적 원근감을 폐기한다. 풍경만이 아니라 사람도 기하학적으로 분해한다. <대수욕도>는 형상과 색채의 기본 구조는 근본적으로 똑같다고 생각한 세잔의 문제의식을 사람에게 적용한 대표적인 작품이다. 신체의 세부 묘사는 생각하고 몇 가지 특징만 다순화했다. 머리는 원구 느낌이고, 몸은 원통이 기본 도형이다. 가슴은 둥근 원이나 삼각형으로 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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