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 미술1
르네상스는 재생 또는 부활을 의미한다. 주로 새로운 흐름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던 14~16세기를 꼽는다. '재생'이라는 의미를 부여한 것은 고대 그리스, 로마 문화를 이상으로 하여 부흥시키고자 했기 때문이다. 산드로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은 그리스 문화에 대한 관심을 보여 주는 작품으로, 미와 사랑의 여신 비너스(아프로디테)의 탄생 신화를 담았다. 비너스가 제우스의 정액에서 태어나 조개껍질을 타고 키프로스 섬에 상륙한 순간이다. 바람의 신이 비너스를 해안으로 인도하고, 요정이 옷을 들고 맞이하고 있다.
그리스 문화에 대한 관심은 인간에 대한 관심이기도 하다. 중세에는 예수나 성모, 예수의 제자, 절대적 믿음을 상징하는 인물을 주로 묘사했다. 당연히 인간적 면모보다는 종교적 신성함이 강조되었다. 반면 그리스 신화는 신이라 하더라도 인간의 냄새를 진하게 풍긴다. 사랑과 질투, 기쁨과 슬픔 등 인간적 감정을 분출한다. 게다가 그리스 조각에서 보듯이 인간의 몸 자체를 드러내는 데 거리낌이 없다. 보티첼리가 여신 비너스를 통해 드러내고자 했던 것은 사실 인간 육체의 아름다움, 조금 더 나아가서는 육체적 유혹이었을 것이다.
중세 후기에 치마부에와 조토, 두초 등이 시도한 사실주의를 향한 발걸음은 르네상스를 맞이하며 가속도가 붙는다. 조각과 회화 모두에서 비약적인 발전이 나타난다. 이는 그리스, 로마 조각에 대한 실증적 연구 작업에서 자극받은 것으로 볼 수 있다. 때문에 르네상스 초기와 중기 미술의 사실성은 상당 부분 그리스 미술의 이상화된 사실주의 전통을 담고 있다.
르네상스 조각의 새로운 가능성을 연 사람은 도나텔로다. <다비드>를 보면 그리스의 이상화된 사실주의 요소가 나타난다. 그는 먼저 인체에서 중세의 두꺼운 옷을 벗겨 냈다. 모자와 신발만 걸쳤을 뿐 알몸을 드러내 인체의 아름다움을 뽐낸다. 한 발에 긴장을, 다른 발에 이완을 주는 형식도 그리스 그대로다. 소년기의 발랄하고 탄력 있는 신체가 주는 아름다움을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다. 가는 몸매에 근육도 덜 발달했지만 허리에 살짝 들어간 굴곡과 다리로 이어지는 곡선이 자연스럽다. 실제의 인물 재현보다는 소년기의 이상적인 신체다. 전체 균형과 신체 각 부분이 가장 아름다운 형태로 선택된 느낌이다.
미켈란젤로의 <다비드>는 이상주의적 사실성을 더 잘 보여 준다. 그는 도나텔로의 작품을 배우기도 했는데, 그리스적 요소를 더 강화하여 도나텔로의 평판을 넘어서고자 했던 것 같다. 미켈란젤로의 <다비드>는 청년의 몸을 통해 근육의 결이 주는 아름다움을 과시한다. 해부학적인 사실성도 더 진전되었다. 도나텔로의 <다비드>에서는 갈비뼈와 배의 근육, 무릎의 구조, 특히 몸과 다리를 잇는 부분의 처리가 막연해 미숙한 감이 있었다. 하지만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에 와서는 도나텔로가 어정쩡하게 처리했던 부분들이 해부학적으로 보다 명확해진다.
회화에서는 이상주의와 거리를 둔 사실주의 경향도 나타난다. 도메니코 기를란다요의 <할아버지와 손자>는 흔히 추하다고 여기는 모습까지도 숨기지 않는다. 사마귀가 가득한 기형 같은 코가 그대로 묘사됐다. 이마와 눈가의 주름살이 깊이 패었고, 턱이나 뒷목의 살은 접혀 있다. 머리카락이나 눈썹도 온통 하얗다. 또한 주인공이 피렌체의 부유한 은행가임에도 불구하고 기를란다요는 옷이나 가구를 통해 사회적 지위를 부각시키지도 않았다. 단지 원근법 효과를 위해 창밖 풍경만 그려 넣었다. 특히 할아버지는 머리카락이나 눈썹 한 가닥도 놓치지 않고 세세하게 표현했다. 또한 노인의 거칠고 메마른 피부가 느껴질 정도로 사실적 묘사에 심혈을 기울였다. 화가는 명암법에 정통해서 창을 통해 들어노는 빛이 얼굴에 어떤 효과를 내는지 꿰뚫고 있는 듯하다. 얼굴 각 부분에 빛이 어떻게 반영되었는지가 다 보이도록 했고 심지어 반사광까지도 반영했다.
사실성의 획기적인 강화와 함께 르네상스 미술가들이 인체를 다루는 방식에서 특기할 점은 과장되게 느껴질 정도의 역동성이다. 팔과 다리, 몸통의 뒤틀림을 통해 인체의 긴장도를 극대화하여 그림을 마주하는 순간 긴장감이 느껴진다. 과장된 역동성 구사에 가장 뛰어난 화가는 단연 미켈란젤로다. 그는 바로크 미술의 꿈틀대는 화면에 직접 영향을 준다.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의 <최후의 심판>이나 <천지창조>는 역동적 인체의 결정판이다. 인간이 몸을 통해 구현할 수 있는 온갖 극적인 동작이 성당의 벽과 천장에 고스란히 들어 있다.
중세 후기, 평면 캔버스에 회화 기법을 통해 공간적 깊이를 실현하고자 했던 두초의 시도는 이후 르네상스 미술가들에게 영감과 자극을 주었다. 그들은 아직 서툴게 구현되었던 투시화법을 완성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특히 전면과 후면 사이의 수적 비례를 정교하게 계산한다. '수태고지'를 다룬 다양한 작품들을 보면 중세 후기의 그림에 비해 더 깊어진 공간을 느끼게 된다. 또한 르네상스 미술 내에서도 더 멀리까지 확장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특히 수태 사실을 알리는 천사의 뒤편 구조나 배경을 통해 투시화법을 구현하는 경우가 많다.
다빈치는 <최후의 만찬>에서 그간의 문제점을 해결한다. 먼저 예수의 손을 식탁으로 내려놓아 시간상의 합리성 문제를 해결한다. 예수의 침묵과 제자들의 소란 사이의 간극에서 오히려 긴장감이 높아진다. 또한 제자들과의 간격을 설정하여 자연스럽게 예수에게로 시선이 모이도록 했다. 성질 급한 베드로가 달려가듯 움직이는 바람에 유다는 식탁 쪽으로 밀쳐져 등을 돌리는 모습을 취하게 됨으로써 배신의 상징을 자연스럽게 유지했다. 제자들은 규칙적으로 배치하지 않고 예수의 왼쪽과 오른쪽으로 집단을 구분하여, 일어선 사람과 앉은 사람, 정면과 측면 등을 교차시켜 파문이 일고 있는 소란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라파엘로는 예수를 바닥에서 공중으로 올린다 두 남자가 예수를 무덤으로 옮기기 위해 들어 올리는 장면을 연출하여 순간적으로 생동감을 불어넣었다. 예수의 머리 쪽 남자는 뒷걸음으로 계단을 오르는 동작을, 다리 쪽 남자는 밑에서 받치며 따라가는 동작을 취해 동적인 효과를 극대화했다. 라파엘로는 뒤로 젖혀진 고개와 축 늘어진 오른팔, 힘없이 살짝 접힌 허리로 배경 지식 없이 보아도 시신이라는 점을 한눈에 알 수 있게 했다. 오른편으로 극한 슬픔에 실신한 성모와 이를 부축하는 여인들이 있지만, 시신을 옮기는 동작이 워낙 강렬에서 집중을 흐트러뜨리지 않으면서도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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